[강화/초지진]1871년 6월 10일

1871년 6월 1일, 조선 조정의 승인 없이 미군 함대가 강화 해협에 진입한다.
이에 조선군은 국경을 침범한 외세 선박을 향해 포격을 가했고, 이로인해 미군 수병 2명이 부상을 입게 된다.

6월 10일 오전, 정박된 미군 함대가 초지진으로 향한다. 초지진 밑 갯벌에 상륙한 미군 함대는 초지진 포대와 성벽을 향해 집중 사격을 시작한다.
강화 해협 입구를 감시하는 초소 성격이 강했던 이곳에 수비대 규모는 100 명 남짓, 100(조선군) VS 600(미군)
무차별 공격으로 조선 수비대는 곧 퇴각하게 되고, 늦은 오후 초지진은 미군에게 완전히 점령당한다.

초지 돈대의 성벽 안에서 바라본 외곽 풍경,
지금은 초지 대교가 보이지만 강화 해협에 초입으로 신미양요 당시, 미군 함대가 들어서는 것을 쉽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초지진

초지 돈대 안으로 들어가는 성벽 입구

규모가 작은 돈대로 전투 목적의 돈대라기 보다는 입구를 지키는 초소 정도의 관문지로 보이긴 했다.

초지진 소나무

초지진 성벽 외곽으로 400살을 살아내고 있는 소나무,
이 나무는 1656년(효종 7년) 초지진을 만들 때 함께 조성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초지진의 역사와 함께한 소나무답게 신미양요랑 그 이후에 운요호 사건까지 포격을 받은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지금은 안전 테두리가 있어 소나무 가까이 가서 포탄 흔적을 볼 수는 없다.

2개의 소나무가 어찌나 무성한지, 안과 밖에 바람의 결이 다르다.
습한 날씨임에도 소나무 그늘 안에 들어가면, 기막히게 선선한 바람으로 바뀐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산책을 하거나 잠시 머물면서 바람을 쐬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 초지진 점령 후,

Rhee, W.; Kim, Y.-J. Understanding Ganghwa Dondae Forts as a Vernacular Model of Construction and Reuse. Buildings 2022

신미양요 당시, 초지 돈대의 이미지이다.
오전에 출격했던 함선은 초지진 밑 갯벌로 인해 발이 빠지는 등 이동이 어려웠음에도 늦은 오후에 완전히 초지진 성벽을 파괴하고 이곳을 초토화했다. 미군은 이곳에서 야영을 쳐 밤을 새운 후, 11일 아침 덕진진으로 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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