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풍루 무예24기 공연 대표 이미지

[기록하기/대한민국_신풍루]무예24기

공연 정보

화성 행궁 정문인 신풍루 앞 광장에서 진행하는 무예 24기는 공연 시간이 30분이 소요된다.

무예 24기 공연

야외 공연이라 무더위가 극심한 7/8월에는 한시적으로 공연이 중단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9월이 들어서면서 공연이 재개된다.
이 날은 9월 초입이라 여름의 열기가 남아있어 햇볕이 따가웠지만, 바람엔 가을이 담겨 있었다.
여름 하늘과는 다른 쾌청하고 조금 더 깊은 하늘색,. 느낌?!?!

신풍루 앞 작은 광장에서 펼쳐지는 무예24기는 인상적이었다.
여러차례 고증을 거쳐 의복까지도 과거의 것으로 구현했다고 하는데, 놀라울 뿐이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 창으로 찌르고 고작 죽통을 잘라내는 정도의 칼임에도 그것이 불과 200여 년 전이라니, 시간의 흐르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난다고 해야 할까,
수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을텐데, 시간이 흘러 이곳에 닿았다. 그 시간과 지금 시간이 잠시 겹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평일임에도 현장 수업인지 초등학생 무리들이 종종 있었고, 일본인/영어권 외국인들도 제법 있었다. 공연이 마무리된 후, 사진 촬영도 진행하니 추억을 남길 수도 있다.

무예 24기 정보

조선 정조는 왕권을 강화하고 도성과 행궁을 호위하기 위해 장용영을 설치한다.
정조가 융릉을 찾는 원행길에도 훈련된 장용영 부대가 철저히 방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을 격게 된 이후, 조선 왕조는 중국과 일본의 무예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의 고유한 무예가 발굴되고 새로운 무예를 창안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1790(정조) 무예도보통지로 24가지 무예가 정리되어 편찬된다.

정조의 명에 따라 실학자 이덕무/박제가, 무예의 달인 백동수가 주역이 되어 기록된 것이라고 한다.
수원 화성에 주둔했던 조선 최정예 부대인 장용영의 훈련 무예를 기록으로 남겨 현재에도 재현을 통해 볼 수 있는 가치있는 문화 유산이지 않을까? 싶다.

화성 행궁 회상

수원에서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울타리에서 살고 있는 나는, 변해가는 화성 행궁을 기억하는 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화성 행궁 옆에 위치한 신풍 초등학교(1896년~) 폐교 관련한 소식이었다. 신풍 초등학교는 1896년 개교한 역사가 깊은 학교로 규모가 작은 편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늘 화성 행궁 앞마당에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는데 굳이 학교를 폐교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결과적으로는 폐교했지만, 여전히 그게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갸웃하긴 한다.

화성 행궁 앞에 위치한 큰 소나무는 기억 속에 늘 그 자리를 지키는 소나무로 더운 여름 소나무 아래 그늘에서 주저앉은 기억을 갖고 있다.
지금은 보호수로 울타리를 쳐 놓았지만, 어릴 적에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나무 위에 올라 매달렸던 기억도 남겨져 있다.

화성 행궁 앞 큰 광장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아 감사할 따름이다.
어릴 적에는 집에서 이곳에 오려면 한참을 버스를 기다려야 했고 그렇게 탄 버스에 몸을 싣고 40-50분 걸려 도착했던 곳이다. 그럼에도 겨울에 이곳에 넓은 얼음장이 있어 몹시 오고 싶었던 곳이었다.

입장료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무엇보다 재미있었던 건, 각자 다른 스타일에 나무 썰매를 갖고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3형제로 나무판을 넓게 해 놓아서 2명이 충분히 탈 수 있었다.

여전히 이 광장을 찾으면 어릴 적 설레임을 되살아나서 행복한 미소를 띄게 된다. 현재는 가을이되면 이 광장에서 연날리기 하는 아이들이 넘치는데, 그 아이들도 나처럼 어른이 되면 이곳이 연을 날리는 행복했던 기억의 공간이 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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