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목줄, 강화도를 지키고자 했던 역사적 전투

한양의 핵심 관문인 갑곶을 지켜내기 위해 조선은 병인양요 이후 전략적으로 초지진 – 덕진진 – 광성보로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병력을 강화해 전력을 보충했다.
한편, 미국은 남북 전쟁이 끝난 후, 전쟁을 통해 얻은 엄청난 군사 기술력과 실전 경험을 토대로 철저한 준비를 갖춘 채 조선으로 출항했다.
초지진 진입시 엄청난 화력으로 조선군은 곧 덕진진으로 철수하며 전략적 후퇴를 선택했고, 덕진진도 역시 같은 선택을 하면서 어재연 장군이 이끄는 광성보로 합류해 전력을 집중하게 된다.
광성보 전투의 핵심 격전지 ‘손들목돈대’

손들목 돈대는 강화해협의 가장 물살이 센 좁은 목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고지로 당시 강화도 방어를 총괄하던 어재연 장군도 이곳에서 병사들과 함께 배수진을 치고 백병전을 벌이게 된다.
조선군은 결사적으로 싸웠다.
그들은 총에 탄약을 넣을 시간적 여유가 없어 창과 검으로 공격했다.
쓰러진 자는 모래를 뿌려 공격했고, 항복같은 건 아예 몰랐다.
조선군은 낡고 뒤떨어진 무기를 가지고도 우리 미군과 맞서 용감하게 싸웠고
그들은 진지를 사수하며 죽어갔다.
아마 우리는 가족과 나라를 위해 그처럼 장렬하게 싸우가다 죽은 군인들을,
다시는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출처 : 윈스필드 스콧 슐레이 회고록
조선은 강화도를 지키기 위해 한양을 지키던 핵심 중앙 군인인 훈련도감과 어영청 소속 정예 요원을 급파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에서 총을 가장 잘 쏘는 핵심 인력인 충청도 산포수_명사수도 광성보 전투에 합류시켰다.
그럼에도 조선은 기술 격차를 극복할 수 없었고 미군은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광성보가 한눈에 보이는 대모산에 포를 배치해 무차별 공격을 진행했다.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된 손들목돈대,
기술적/조직적 우위에 의해 전술적 승리를 거둔 미국에 한국 원정은, 한국군 사망자 350명, 미군 사망자 3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무명용사들의 합장묘


신미양요에 전사자 중 신원을 알 수 없는 이의 시신을 모아 이곳에 합장해 놓았다.
조선은 이 전투 이후, 은둔의 나라로 세계와 단절된 국가로 평가받게 되지만, 조선 서민들에 시선에서 보자면, 제너럴 셔먼호의 선원들의 무례함과 폭력적인 행태,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인들의 무자비한 약탈 등은 평화와 질서를 파괴하는 침략자로 인식했을 것이다. 전투 기록에서 열악함 속에서도 가족과 이웃을 지키고자 했던 그들의 절절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무명용사비 & 쌍충비각



1871년 미군 함대가 강화도를 침공하자 조선 조성에서는 어재연 장군을 현장 최고 지휘관으로 임명하며 광성보로 파견한다. 이 소식을 들은 동생 어재순은 군인이 아닌 유생의 신분임에도 형을 따라 전투에 출전한다.
어재연 장군은 조선 후기 문벌 정치 시기에 가문이나 정치적 파벌의 후광없이 무관으로서의 역량과 경력으로 성장한 전형적인 야전 군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광성보 전투의 지휘관으로 어재연은 미군의 압도적인 포격으로 성벽이 무너지자, 백병전 속에서 직접 칼을 들고 진두지휘하고 칼이 부러지자 진지 안에 있던 탄약통을 던지며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현장에서 동생과 함께 순국한다.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_장수 수(帥)

국가를 대표하던 국기가 없던 시절, 최고 군사 지휘관의 권위와 진지의 생존을 나타내는 수자기. 로 장수 수(帥)로 어재연의 수자기의 모습이다.

미군은 광성보를 함락한 후 4.15m * 4.35m 크기의 대형 수자기를 전리품으로 거두어 드린다. 이후, 이 수자기는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보관된다.
조선 시대 최고 지휘관이 머무는 동안 본영에 늘 대형 수자기를 내걸어 놓았는데, 안타깝게도 잦은 전란과 일제 강점기, 6.25 전쟁 등을 거치면서 대부분 태워지거나 소실되어 조선 시대 전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남겨진 수자기가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있는 어재연 수자기이다.

미국은 전쟁 중 합법적으로 획득한 전리품으로 규정해 반환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태도로 일관하며 반환 요청을 거부했지만, 한국 정부는 ‘학술 연구 및 전시 목적’ 이라는 명분으로 협상을 지속해 10년 장기 대여 후 2년 단위 연장이라는 전향적인 타협안을 이끌어 내 2007년 10월에 드디어 136년 만의 귀환이 된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2024년 미 해군 사관학교 박물관의 특별전 전시 계획으로 인해 미국으로 다시 반납된 상태이다.
그 이듬해인에 수자기 반환 추진 위원회가 발족되어 승전 전리품 규정을 수용할 수 없다는 법적 역사적 논리를 세워나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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