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당성 대표 이미지

[화성/화성 당성]상쾌한 여름의 소나기와 함께😊

이곳은 삼국 시대 축성된 성벽으로 중국 당나라와의 직접 교역과 서해안 방어를 위해 1차로 축조된 후, 통일 신라 시대 2차 성벽으로 확장하여 개축된 곳이라 한다.

방문자 센터 – 동문지 – 1차 성벽 – 망해루지 – 북문지 – 집수지 – 동문지 – 방문자 센터

여름 장마가 시작한 날 방문한 인적이 거의 없는 화성 당성,
안내 표시판도 되어 있고 공개된 지도도 단조로웠지만, 막상 도착하니 실제 지형과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현장 표시판을 따라 직관적으로 이동했고 한 바퀴 돌고 나니 이동 거리가 대략 2km 되었다. 여름에 습한 공기랑 벌레들이 많아서 힘든 면도 있었지만, 길은 정비가 잘되어 있는 편이었고, 시원한 장맛비가 한 차례 쏟아지니 꽤 상쾌했다.

화성 당성 방문자 센터

12시 무렵 도착한 방문자 센터는 점심 시간이라 문이 닫혀 있었지만, 문을 몇 번 두드리니 안에 계신 분이 나와서 화성 당성 지도를 건네 주었다. 방문자 센터에는 실외 화장실이 있어서 출발 전 이용하면 된다. 센터 방문 후 낡고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화성 당성길이 시작된다.

길에 들어서자 축축한 습기가 가득 찬 공기로 땀이 송글송글 맺기 시작했다. 언제 비가 올지 모르는 날씨라 운동화가 아닌 슬리퍼를 신고 출발했다. 슬리퍼로도 큰 불편함은 없는 코스이다.
출발 후 비가 올듯 말듯한 날씨에 짙은 어둠이 깔린 숲 길, 저 길목을 통과할 무렵 묘지도 마주한다.
사실 어릴 적 동네 있는 야산, 딱 그때의 모습 그대로다. 요즘엔 워낙 사람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길도 정비하고 벌목을 해서 그렇지 내가 자랄 무렵에는 산 길목에 비석없는 묘지도 있고 풀도 다소 거칠게 자라게 내버려 두기도 해서 이런 산이 낯설다기보다는 친근했다.

고대 해상 실크로드의 핵심 거점의 상징 ‘당성사적비’

고대 해상 실크로드의 핵심 거점임을 기록하기 위한 당성사적비.
삼국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까지 이른 대중국 무역의 관문이자 해상 실크로드의 핵심 기지임을 기록하고 기념하기 위해 1988년에 건립했다고 한다.

화성 당성은 삼국 시대 백제 – 고구려 – 신라 순으로 지배권을 행사하다가 신라 진흥왕이 이곳을 탈환하면서 백제/고구려 견제를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축조했다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중국(당)과의 무역 항로의 역할로 더 크게 2차 성벽을 축조했다고 한다.

1차 성벽은 테뫼식(산 정상부를 머리띠를 두른 듯 성벽을 둘러쌓은 형태) 구조로 산 가장 높은 곳에 사방을 감시하도록 만들었다가 2차 성벽은 포곡식 산성으로 산자락과 계곡을 한꺼번에 감싸도록 넓게 성벽을 쌓아 올렸다.

1차 성벽

1차 성벽으로 향하는 전체 코스에서 가장 힘든 구간.
축축하게 가득 찬 습기로 약간 심박이 올랐을 뿐인데도 땀이 줄줄 흐리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걸쳐지는 거미줄까지, 전체 구간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구간.

힘든 구간을 마치자, 마주하게 되는 서해안 조망.
날이 좋은 날에는 이곳에서 서해 바다 해안선까지 휜히 보인다고 한다.

능선을 따라가다가 1차 성벽 안내 표지판은 있지만, 길이 정비되어 있지 않아 갈 수는 없다. 실제로 1차 성벽은 보수와 연구가 이어지는 곳이라 출입이 허용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바다를 바라보는 누각_ 망해루지

1차 성벽 능선을 따라 걷다가 보이는 망해루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지만, 탁 트인 공간으로 펼쳐지는 풍경과 바람이 기분 좋아지는 장소였다.

서해안 앞바다랑 육로가 한 눈에 들어오는 최고 명당이라고 하는데 역시 그랬다.
날씨로 주변 경관이 안개로 자욱했지만, 그것조차도 멋진 풍경으로 다가왔다.

망해루지에서 북문지로 내려가는 도중에 갑자기 비가 많이 쏟아져서 큰 나무 밑으로 피신, 안개가 더 자욱해지면서 운치가 깊어졌다. 나란히 비를 피하고 있다가 우산을 쓰고 먼저 내려가시는 분들,. 참 운치 있다.

북문지

내려가는 길목에 있었던 북문지, 안내 표시판이 아니면 북문지인 줄도 몰랐을 듯,
이렇게 그냥 터를 오갈 수 있게 해 놓았다.

집수지

내려오는 길에 멀리서 보이는 푸릇푸릇한 들판에 핀 하얀 계란 꽃 풍경이 동화 속 들판처럼 색감이 강렬하고 생생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직은 정비 중이고 인적이 드문 곳이라 그런지 날 것 그대로의 향수를 머금고 있다고 해야 할까, 정겨움도 있고 곳곳에서 기존에 다녔던 곳과는 다른 묘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갑자기 어두워지는 어두컴컴한 길목이 더 깊은 숲으로 끌어들이는 신비로움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한 바퀴 돌고 저 안으로 들어간다는 게 설레인다. 습한 날씨로 땀이 꽤 많이 흘렸지만, 중간중간 쏟아지는 폭우가 여름 특유에 상쾌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다른 계절에는 이곳이 어떤 느낌일까 싶기도 하고, 가을 노을 지는 풍경이 꽤 아름다울 것 같은 느낌, 잊지 않고 다시 찾아와야겠다.

원효 대사와 의상 대사의 얽힌 이야기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661년), 원효와 의상은 불교를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다. 당시 삼국 통일 전쟁이 한창이었던 시기로 유학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두 스님은 바닷길을 통해 당으로 향한다.
가던 길목에서 두 스님은 산 속에서 노숙을 하게 되는데, 어두운 밤에 원효는 목이 말라 주변을 더듬어 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게 된다. 그 어두운 밤에 마신 물이 몹시 시원하고 단맛의 물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 날 깨어보니, 밤새 마신 물은 해골에 고인 썩은 물임을 확인하게 된다.🫢
원효는 이 경험을 통해 사물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오직 마음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의 깊은 깨달음을 얻어 당나라 유학길을 접고 다시 신라로 돌아가 대중 불교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원효와 의상은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실제 역사학에 기록된 내용으로 원효의 깨달음을 얻은 오도처 논쟁이 있는데 그 오도처(원효의 깨달음을 얻은 장소) 중 하나로 당성이 언급되고 있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


The Observer's Archive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

The Observer's Archive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